





조선 마지막왕비 이방자여사 부부잔
Product Description
조선 마지막왕비 가혜 이방자여사님 부부잔입니다 도천 천한봉 선생님이 도자기를 만드시구 이방자여사님이 수결을 적으셨습니다 이방자여사님 철화 부부잔은 이도다완에 비해 희소합니다 상태 완벽한 제 박스 있는 미사용품입니다. 작은 잔 구연부 7cm x 높이 7cm 큰 잔 구연부 7cm x 높이 7.5cm 일본 국왕 메이지[明治]의 조카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[梨本宮守正] 친왕(親王)의 딸로 태어나, 히로히토[裕仁] 왕세자의 비로 정해졌다. 이후 학습원(學習院)에 입학, 왕비수업을 받던 중 1916년 일본에 볼모로 잡혀와 일본 육군사관학생이 된 영친왕과 정략적 약혼을 하고, 1920년 황태자비가 되었다. 1921년 아들 진(晉)을 낳고, 1922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진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. 1931년 다시 아들 구(玖)를 얻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나, 1945년 광복으로 일본왕족에서 제외되어 거처와 재산을 몰수당하고, 고생 끝에 1963년 의식불명이 된 병석의 영친왕과 함께 귀국하였다. 1962년 한국국적 취득 후 1963∼1982년 신체장애자 재활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, 1965년 자행회(慈行會)를, 1966∼1988년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하였다. 1967∼1986년 사회복지법인 명휘원(明暉園) 이사장 및 총재, 1971년 영친왕기념사업회 이사장, 1975년 수원시 자혜학교(慈惠學校) 이사장, 1982년 광명시 명혜학교(明惠學校)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영친왕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정박아 교육·지체부자유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기술교육 등 육영사업에 정성을 쏟았다. 어린 마사코[方子]가 임신할 수 없다는 일본국의 은밀한 진단결과에 따라 조선왕족의 단절을 꾀한 정략결혼의 희생자이기는 하였으나, "내 조국도, 내 묻힐 곳도 한국"이라는 신념으로 봉사해 왔다.